자폐스펙트럼(ASD)은 ‘말이 늦다’라는 인상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시선 맞춤과 손가락 가리키기 같은 공동주의, 이름 반응, 가짜놀이(상징놀이), 흥미의 폭과 반복 행동, 감각 처리, 일과 변화에 대한 유연성 등 여러 축이 동시에 관찰되어야 한다. 특히 18개월과 24개월은 조기 선별의 결정적 시기다. 18개월에 의미 있는 제스처와 공동주의가 안정적으로 나타나지 않거나, 24개월에 두 단어 자발 조합이 적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제한적이면 전문 평가를 권한다. 이 글은 보호자가 집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18·24개월 핵심 신호, 가정용 스크리닝(M-CHAT/R) 활용법, 3일 관찰·영상 기록 요령, ‘지금 할 수 있는’ 상호작용 코칭, 의료·치료 연계 루트까지 한 번에 정리했다. 핵심은 기다림이 아니라 실행이다. 관찰→기록→선별→연계의 순서를 빠르게 밟을수록 언어·사회성·놀이·일상기술의 개선 곡선이 더 가파르게 상승한다.
조기 신호는 ‘한 가지 증상’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패턴’: 18·24개월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
ASD의 조기 신호는 단일 증상이 아니라 상호작용 패턴의 변형으로 드러난다.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본다, 함께 한다, 함께 즐거워한다’가 더 선명한 단서다. 예컨대 12~18개월에 보호자가 창밖의 비행기를 가리킬 때 아이가 그 손끝을 따라 하늘과 보호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시선 전환, 흥분을 공유하려는 표정, 의미 제스처(가리키기·보여주기·끄덕임·손 흔들기), 물건을 건네며 함께 놀자고 초대하는 행동은 사회적 소통의 핵심이다. 반대로 관심 대상에만 응시하고 사람의 얼굴·목소리에 대한 반응성이 낮거나, 이름을 여러 번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손을 잡아 끌어 가져가게만 하는 경우, 장난감은 기능보다 회전·정렬·부분에 집착하는 경우, 소리·질감·빛에 과민 또는 둔감하게 반응하는 경우, 안 되던 것을 다시 하게 되는 ‘발달의 회귀(퇴행)’가 보이는 경우는 위험 신호다. 중요한 점은, 이런 단서들이 ‘항상’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령대에 기대되는 빈도와 질’에 못 미칠 때 조기 개입의 창이 열렸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18개월은 공동주의·제스처·상징놀이의 틀이 갖춰지는 시점이고, 24개월은 두 단어 자발 조합과 간단한 역할놀이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빠르게 확장되는 시기다. 이 두 시기를 지나 ‘그냥 기다려 보자’고 미루면, 아이는 학습 기회의 밀도가 떨어지고 보호자는 불안과 혼란 속에서 비일관적 대응을 반복하기 쉽다. 반대로 오늘부터 3일만 체계적으로 관찰·기록하고, 가정용 스크리닝 도구를 적용해보고, 소아과·발달클리닉에 연결하면 궤도를 바꾸는 데 필요한 정보와 개입이 빠르게 정리된다. 이 글은 그 과정을 절차로 바꿔준다. 첫째, 패턴을 관찰한다. 시선·제스처·이름 반응·가짜놀이·반복 행동·감각 반응을 상황별로 체크한다. 둘째, 증거를 남긴다. 30~60초 영상을 3개(놀이·이름 반응·요구 상황) 촬영한다. 셋째, 선별을 진행한다. 16~30개월용 M-CHAT/R 같은 도구를 가정에서 예비 점검하고, 결과와 영상·체크리스트를 들고 진료에 간다. 넷째, 기다리지 않는다. 수면·식사·놀이 루틴을 안정시키고 상호작용 기반 코칭을 곧바로 시작한다. 이 네 단계만으로도 ‘막막함’은 ‘실행 계획’으로 바뀐다.
18·24개월 실전 관찰 매뉴얼: 핵심 신호 12가지, 가정 스크리닝과 기록 요령, 코칭과 진료 연계
첫째, 18개월 포인트. ① 공동주의: 보호자가 가리키면 같은 것을 바라보고 다시 보호자를 보며 표정을 공유하는가. ② 제스처: 요구·거절·인사·보여주기·끄덕임·고개 젓기 등 의미 제스처가 다양하고 자발적인가. ③ 이름 반응: 소음이 없는 환경에서 3회 중 2회 이상 돌아보는가. ④ 흥미의 폭: 특정 장난감·소리·영상에만 붙들려 있지 않고 상호작용으로 관심을 전환하는가. ⑤ 놀이의 질: 굴리기·쌓기 같은 기능놀이를 넘어 컵으로 인형에게 ‘마시는 척’ 같은 상징놀이의 싹이 보이는가. 둘째, 24개월 포인트. ⑥ 언어 결합: 자발 두 단어 조합(“엄마 가”, “물 더”)이 자연스럽고 상황에 맞는가. ⑦ 사회적 모방: 박수치기·표정 따라하기·행동 따라하기가 놀이 속에서 빈번한가. ⑧ 역할놀이: 전화받기·밥먹이기·병원놀이 등 간단한 역할이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가. ⑨ 유연성: 일과 변화·경로 변경에 대한 저항이 과도하지 않은가. ⑩ 감각 반응: 큰 소리·밝은 빛·의복 태그·양치·머리감기 등에 과도한 거부 또는 통증 둔감이 지속되지 않는가. 공통 신호로는 ⑪ 반복 행동: 손 흔들기·빙글 돌기·줄세우기·불빛·바퀴에 과집중이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는지, ⑫ 퇴행: 하던 단어·제스처·놀이가 몇 주~몇 달에 걸쳐 줄었는지를 본다. 셋째, 가정 스크리닝. 16~30개월이면 M-CHAT/R 같은 체크리스트를 예비 적용해 위험 신호를 구조화한다. 점수는 진단이 아니라 ‘전문 평가 의뢰 신호’일 뿐이므로 결과에 좌우되지 말고 임상적 의심이 크면 그대로 진료에 연결한다. 넷째, 기록 요령. 3일 동안 같은 시간대에 ① 자유놀이 60초(어른은 말수 최소, 시선·제스처·놀이 질 관찰), ② 이름을 5초 간격으로 3회 부르는 장면, ③ 원하는 것을 상자에 넣어 도움 요청을 유도하는 장면을 촬영한다. 영상은 얼굴·손이 모두 보이도록 측면 45도에서 찍고, 배경 소음·자막·음악을 줄인다. 다섯째, ‘바로 할 수 있는’ 코칭. ① 공동주의 열기: 아이가 바라보는 것을 어른이 따라가며 서술하고(“빨간 트럭이 달리네”), 아이의 손끝을 따라 같은 대상을 번갈아 본다. ② 제스처 모델링: 말과 제스처를 함께 과장해 보여주고(가리키며 “더”), 3~5초 기다린다. ③ 역할놀이 프라이밍: 인형·식기·의사놀이 세트를 꺼내 보호자가 먼저 두 세트의 역할을 시범 보인 뒤 아이의 참여를 유도한다. ④ 통제된 좌절: 투명 용기에 간식·장난감을 넣고 뚜껑을 느슨히 닫아 ‘도와줘’ 제스처·단어를 유도한다. ⑤ 화면 위생: 총 노출을 줄이고 공동 시청+설명 대화로 전환, 혼자 시청을 중단한다. 여섯째, 진료·치료 연계. ① 소아과에서 청력·시력·성장과 전반 발달 선별로 출발, 필요 시 발달클리닉 의뢰. ② 평가 도구(예: 언어·사회성·행동 관찰, 표준화 검사)와 다학제 면담으로 강점·필요 지원을 수립. ③ 개입은 자연주의 발달행동중재(NDBI) 계열의 상호작용 중심 치료, 부모 코칭, 언어·작업치료, 필요 시 행동 전략으로 구성한다. ④ 가정 목표는 SMART하게 설정한다(예: “하루 20회 공동시선 유도, 제스처 5종 모델링, 역할놀이 10분”). 일곱째, 감별 포인트. 난청·반복 중이염은 이름 반응과 언어를 늦출 수 있으므로 반드시 배제한다. 수면부족·철결핍·우울한 양육 환경·과도한 스크린 역시 사회적 반응성을 일시 저하시킬 수 있어 동시 교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다리면 다 나온다’, ‘남자아이는 원래 늦다’, ‘말만 늦으면 ASD가 아니다’ 같은 통념을 경계한다. 아이의 하루 상호작용 질과 빈도는 보호자가 설계로 바꿀 수 있고, 조기 개입은 예후를 유의미하게 바꾼다.
관찰·기록·선별·연계의 4스텝: 오늘 시작하는 2주 실행 계획
첫째 주는 관찰과 기록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15분을 비워 자유놀이·이름 반응·요구 유도 장면을 만들고 30~60초 영상 3개를 확보한다. 동시에 공동주의·제스처·이름 반응·상징놀이·반복행동·감각반응 체크리스트를 채운다. 화면 노출을 줄이고, 낮의 햇빛·몸놀이·낮잠·규칙적 식사를 복구해 사회적 에너지가 올라오는 기반을 만든다. 둘째 주는 선별과 개입의 병행이다. 가정용 스크리닝 도구로 예비 점검을 하고, 결과와 영상·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소아과·발달클리닉에 예약한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코칭을 멈추지 않는다. 하루 10분 ‘함께 보기–가리키기–번갈아 보기’ 루틴, 10분 역할놀이, 10회 제스처 모델링과 3~5초 기다림을 고정한다. 침·머리감기·의복 태그 같은 감각 이슈에는 강한 노출 대신 짧고 자주, 예측 가능한 노출과 시각·언어 예고를 붙인다. 한 주가 끝나면 영상을 다시 찍어 처음과 비교한다. 시선 전환이 늘었는지, 제스처가 자발적으로 나오는지, 이름 반응이 개선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본다. 변화가 미미해도 낙담하지 말자. 조기 개입의 성과는 ‘단위 시간당 상호작용의 기회’가 누적될수록 커진다. 보호자는 치료실 밖 가장 강력한 치료자다. 아이가 강점을 보이는 채널(음악·감각놀이·그림)을 발판으로 상호작용을 붙이고, 작은 성취를 즉시 언어로 연결한다(“네가 손으로 가리키니까 내가 바로 알아들었어”). 다음은 레드 플래그 정리다. 16~18개월 의미 제스처 거의 없음, 18개월 이름 반응 지속 저하, 24개월 두 단어 조합 없음, 상징놀이 결여, 반복 행동과 흥미 범위의 심한 제한, 발달 퇴행, 과도한 감각 문제—이 가운데 두세 가지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 평가를 서두른다. 마지막으로, 조기 선별은 ‘낙인’이 아니라 ‘지원’의 시작이다. 관찰과 기록으로 불안을 데이터로 바꾸고, 선별과 연계로 실행을 구체화하라. 오늘 체크리스트 1줄, 영상 1개, 역할놀이 10분이면 충분한 출발이다.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는 설계로 넓어진다. 그 문을 지금, 보호자의 손으로 열어 주자.